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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팽잠심 (한서대학교) 장경희 (한서대학교)
저널정보
한서대학교 동양고전연구소 동방학 동방학 제46호
발행연도
2022.2
수록면
317 - 347 (31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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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칠(洋漆)은 일본 마키에(蒔繪) 기법을 부르는 중국의 명칭이다. 칠공예는 중국과 일본의 문화교류를 상징하는 분야인데, 그중 금을 사용하여 그리는 화려한 표현기법 때문에 양칠은 특히 청 황실의 애호를 받았다. 이에 본고는 청 황궁에서 소장되어 있던 800여 점의 문서와 해당 시기의 회화나 공예품을 분석하여 양칠의 명칭이나 기법 및 그 제작실태가 시기에 따라 어떻게 변화하는지를 실증적으로 밝혀보았다. 그 내용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청 강희제 때에는 일본의 마키에 공예품이 수입되었다. ‘양칠’이라 부른 공예품은 궁중과 일부 시인묵객들의 애호를 받았다. 둘째, 청 옹정제 때에는 일본식 기법을 제작하기 위해 공방을 설치하고 장인을 두었다. 청 황궁 내에 공방을 설립하였고 관리와 장인을 조직하여 제작하였다. 일본의 마키에를 중국식으로 모방하였기에 ‘방양칠’로 불렀고, 중국식 기형에 일본식 문양이 절충되는 칠기를 제작하였다. 셋째, 청 건륭제 때에는 황제가 이 공예품을 애호하여 궁중 내 공방에서 활발하게 제작하여 널리 보급되었다. 금으로 칠하는 기법의 특성으로 ‘양금’이라 불렀고, 중국식 기물에 중국식 문양을 그려 중국화되는 경향으로 발전하였다. 공예품의 품종이 다양해지고 수량도 많아졌다. 이처럼 청대의 양칠은 강희제 때 도입되지만, 옹정제 때 제도화되었고, 건륭제 때 전성기를 맞이하였음을 알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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