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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김경옥 (목포대학교)
저널정보
국립목포대학교 도서문화연구원 도서문화 도서문화 제32집
발행연도
2008.12
수록면
241 - 272 (32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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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교동의 입지환경, 섬주민들의 入島와 定着, 築筒·堤堪을 통한 토지개간, 섬의 공간변화에 주목한 사례연구이다.
교동도는 개경과 황해도, 경기도 내륙, 삼남지방 등을 연결해 주는 교통의 요충지에 위치한다. 또 도성 방어를 위해 각 시기마다 다양한 군사적 기능을 담당하였다. 이러한 입지적 조건으로 인해 조선 인조 때 京幾水營이 교동도로 옮겨졌고, 京幾道水軍節度使가 三道統驚使를 겸하였다.
교동의 주요 성씨들은 대략 10~12代에 입도한 것으로 확인된다. 이들은 식수와 땔감을 구할 수 있고, 경작지를 마련하기에 적합한 곳에 정착하였다. 즉 東面의 상용리, 西面의 서한리와 난정리, 南面의 읍내리, 北面의 삼선리 일원이었다. 후대 사람들은 이 일대를 '문전옥답'이라 불렀다.
18세기 중엽 교동에 2개의 제언이 설치되었다. 즉 榮山堤堪과 ?州洞堤堪이 그것이다. 이 가운데 교동도 구산리에 건립된 榮山堤堪의 규모는 건설 초기 약 200尺 정도였으나, 19세기 말엽에 약 600尺 규모로 크게 확장되었다. 제언의 규모만큼 토지개간도 증가하였다. 20세기 교동 사람들은 대단위 간척지에 필요한 농경수를 확보하기 위해 저수지를 설치하였다. 그 결과 주민들은 섬에서 토지를 단위로 하여 경제생활을 영위할 수 있었다.

목차

논문개요
Ⅰ. 머리말
Ⅱ. 연구대상지역의 개관
Ⅲ. 喬桐 사람들의 入島와 定着
Ⅳ. 築筒·堤堪을 통한 토지개간
Ⅴ. 맺음말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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