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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이성초 (조선대학교)
저널정보
한국민요학회 한국민요학 한국민요학 제57집
발행연도
2019.12
수록면
189 - 221 (33page)
DOI
10.56100/KFS.2019.12.57.1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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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0년대는 본격적인 신민요의 등장 시대로, 소리꾼들은 전통소리를 유지하거나, 신민요를 수용하거나의 기로에 서게 된다. 당시 서도지역의 명창인 김주호는 인기 있던 신민요 가수들과 같이 음반을 취입하는 등 전통소리를 고수하던 서도지역의 다른 명창들과는 다른 행보를 보이고 있어 궁금하였다. 이에 김주호의 음악활동 양상에 대해 살펴보았고, 이를 토대로 당시 서도명창으로서의 김주호의 음악적 영역과 위상을 생각해보고자 하였다.
김주호는 당대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던 신민요 가수 선우일선과 같이 신민요의 음반을 많이 취입하였다. 선우일선과의 녹음은 음반 판매량 및 연주활동에서 대중적 인기를 추구하기 위한 방편으로 해석된다. 또한 당시 유명했던 작곡가 및 작사가들의 작품을 취입한 것으로 보아 신민요에서 김주호의 영역이 결코 적지 않았던 것을 알 수 있다.
〈칠석보〉, 〈평양승지〉, 〈전쟁가〉, 〈향산유람가〉, 〈날찾네〉, 〈발림엮음〉, 〈전쟁가〉등 다양한 서도잡가를 취입하였고, 이 중 김주호의 음원이 유일한 경우도 꽤 보인다. 그는 신민요 못지 않게 전통소리에도 심혈을 기울였고, 전통소리의 창작능력 역시 뛰어났던 것으로 추측된다.
또한 그는 재담소리에도 능했던 명창이었다. 총 11곡의 재담소리 음반을 취입하였고, 이 중 김주호가 창작한 〈맹꽁이타령〉은 당시 큰 인기를 구가하였다. 당시 서울지역의 박춘재가 재담소리로 큰 인기를 구가했었는데, 서도지역에서는 김주호가 박춘재와 비슷한 위상을 가지고 있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그가 취입한 음악의 특징을 살펴보면, 비교적 빠른 템포로 악곡을 축약하여 불렀던 것으로 파악된다. 다른 서도명창들에 비해 서도잡가나 수심가를 부를 때도 사설을 촘촘히 엮어주는 특성이 또렷히 들어나는데, 이는 빠르게 엮어 부르는 것을 추구하는 그의 음악적 성향이 반영된 것으로 볼 수 있다.
김주호는 20세기 초반 급변하는 시대적 상황에 살아남기 위해 당시 유행하던 신민요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였으나, 한편으로는 전통음악의 창작 및 전승에도 힘썼던 명창이다. 전통 음악의 전승과 신민요의 수용은 당시를 살아가던 모든 음악인들의 고민이었을 것이고, 김주호 역시 이 부분을 치열하게 고민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그는 결국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고, 전통음악의 계승을 기본으로 하면서, 시대의 변화에 살아남기 위해 신민요를 받아들이고, 본인만의 소릿조를 만드는 등 다양한 모색을 하였던 것으로 평가된다.

목차

국문초록
Ⅰ. 머리말
Ⅱ. 김주호의 음악활동 양상
Ⅲ. 맺음말
참고문헌

참고문헌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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